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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2018.09.11 삼월의 판타시아 여름기획 "걸즈블루" #삼파시여름
2018. 9. 11. 00:02


출처 : https://twitter.com/i/moments/1036432969202688000


삼월의 판타시아 신기획 '걸즈 블루' 소설 모음


#1

"우와아......"

내 이런 탄성에 잠에서 깼다. 시선을 시계 쪽으로 향했더니 딱 오전 5시.

알람 소리가 나기 한시간 전에 일어난 게 된다.

동굴처럼 엷은 어둠 속에서, 저편에서 보이는 빛을 향해 걷고 있자니

갑자기 셔터 같은 게 내려와 빛이 닫혀버린... 그런 꿈이었다.


#2

어르슴한 어둠 속, 때때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이 들리는 그 공간에 있던 게

꿈이었던 거에 안심한 나는 후우 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고, 살에 끈적이며 엉겨붙은

기분 나쁜 땀을 닦으면서 문득 웃고 말았다. 내 마음에 자리잡은 불안은 어느샌가 이렇게나 쑥쑥 자랐단 말인가.

오늘부터 여름방학이 시작된다.


#3

작년 여름에는 필사적이었다. 여름 콩쿨에 맞춰, 취주악부의 여름방학은 강화연습기간이 된다.

입학식 때의 연주에 매료되어 이끌리듯 친구와 같이 입부하여, 초심자인 우리들은 조금이라도

나은 음색을 낼 수 있도록 악착스럽게 연습했다. 녹초가 되면서도 계속 불 수 있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.


#4

플루트를 계속 불었었다. 하지만 지금, 그 플루트를 불 수 없게 되어버린 상태다. 지난 달 연주회 무대에 선 순간, 

어렴풋 손발이 떨리고 있었다. 몸에서 차츰차츰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고, 머리는 앱이 버그를 일으켰을 때처럼

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.


#5

그렇게나 큰 회장에서 연주한 건 처음이었다. 호흡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. 

외웠을 터인 악보도 머릿 속에서 백지처럼 사라져,

지금 내가 어느 부분을 불고 있는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점차 패닉에 빠져 손을 멈춘 순간도 있었다. 형편없었다.

그 이후,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다.


#6

잘 해야지, 좀 더 연습해야... 하지만 어떻게 불어도 음은 뻣뻣하고 울려퍼지지 않는다. 그걸 고려하고 불면 불수록

음정도 불안정해져버린다. 이전처럼 자유롭게 불 수 없다. 그저 연주에 몰두하여 불던 그 땐, 어떻게 불었던 걸까.

연습 준비를 하는 내 마음을, 불안이 점차 침식해온다.


#7

"여름연습, 힘-내자!" 음악실에 도착하자마자, 친구가 내 앞으로 슬쩍 얼굴을 내민다. 응. 올해는 콩쿨 나가고 싶어!

뒷말은 입에 내지 못하고, 응, 하고 작게 웃는다. 여름방학이 끝날 즘엔 콩쿨멤버를 결정하는 부내 오디션이 치뤄진다.

작년엔 조잡한 실력이라,


#8

듣는 쪽이 조마조마한 연주였었는데, 오디션에 합격하게 해주었다. 결과는 둘 다 낙선이었지만, 그 이후로 좀 더 둘이서

연습에 빠져들게 되었다. 익살스럽게 파이팅 자세를 취한 친구의, 나를 향한 강한 빛이 번진 그 웃음에 지금은,

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.


#9

안녕~,하며 변함없이 태평한 소리를 내며 선생님이 들어온다. 그 뒤로 계속해서 입실하는 모르는 면면.

"나 혼자선 어려울 거 같아서, 여름방학 기간에 매일같이는 아니어도 대학생 OB에게 지도해달라고 부탁했어"

이전보다, 꽤나 커진 배에 손을 올린 선생님이 말했다.


#10

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남자. 그게 플루트 담당 선배의 첫 인상이었다. 자기소개 때 변화없는 표정이며, 목소리 톤.

말수 적음. 그런 선배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연습은 진행된다. 전반 메뉴가 끝나고, 여기서부터다. 한층 더 땀 밴 손으로

플루트를 쥔다.


#11

파트 연습이 시작된다. 플루트 윗관만을 사용한 소리내기까지는 할 수 있는데, 정작 플루트를 손에 쥐면 

몸이 제멋대로 긴장하는 걸 느낀다. 역시 음이 뻣뻣하다. 힘을 빼면 어찌해도 맥아리 없는 소리가 되어버린다.

웜업도 충분히 했다. 집에서 몇번이건 연습했다. 어째서, 어떻게 해야...


#12

"깊게 생각하고 있어"

등 뒤에 선배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꽂힌다.

"알고 있어요... 그치만, 생각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면 결국은 "생각하지 않는 걸" 생각해버려서, 

뭐랄까, 어떻게 불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요..."하고 호소한 말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, 네, 하며 힘없이 끄덕였다.


#13

마지막 합주에서도, 오늘도 홀로 어색한 소리가 났다. 귀갓길, 선배의 그 한마디가 머릿속을 맴돈다. 

난 어째서 잘하지 못하는 걸까.어째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까. 묵혀둔 감정이 안에서부터 점차 흘러나온다.

마을 풍경이 흐렷해져서 빰을 싸늘하게 적셨다. 난 그 눈물을 쓰윽 닦았다.


#14

여름연습은 매일 계속된다. 어느 날 밤. "숨이 얕아. 런닝 같은 거 안하면 따라잡을 수 없을 걸"라고 말한 선배의 말을 떠올렸다.

참지 못하고 차갑게 날아든 말투에 더욱 우울해져, 나, 역시 안 맞는 걸까,하며 침대에 누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.


#15

영원 같이 길게 느껴졌던 연습. 이제, 그만둘까하고 생각할 때, 문득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풍경이 재생되었다.

다같이 연주해서 빛에 감싸인 그 세계. 그 소리. 그 두근거리던 가슴. 분해. 바꾸고 싶어. 바꿔야지. 

이 닫힌 세계로부터 뛰쳐나갈 곧은 힘이 필요해.


#16

다음날 아침.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. 여름 아침의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았던 건 처음 뿐. 원래 체력이 있던 편이 아니니

숨차는 게 빠르다. 힘들어. 걸음을 내딛는게 힘들어. 하지만, 마지막까지 달리면 약한 자신이라도 변할 수 있을 거 같아서,

페이스를 떨어뜨리면서도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달렸다.


#17

달리기 시작한지 7일째.

이 날은 여태껏했던 연습과는 달랐다. 제대로 힘을 뺀 것인지, 매끄럽게 좋은 음을 내는 순간이 몇 번인가 있었다.

아직 불안정하거나 갈팡지팡하는 건 있었지만, 예전의 그 감각이 잡힌 그런 순간이 있었다. 

그건, 내 마음을 뒤덮는 불안의 그림자를 베는 한 줄기 빛이 내린 것 같았다.


#18

매일매일, 달렸다. 여전히 고통스럽다. 하지만 꾸준히 필사적으로 달리는 거에 개운해짐을 느끼게 되었다.

달리고 있을 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. 또, 플루트를 부는 상태도 조금씩 나아졌다.

최근엔 연습이 즐거웠다. 내 마음을 지배하던 불안이 조금씩 기색을 감추기 시작했다.


#19

언제나처럼 달리기를 끝내고, 쿨다운하려고 걷고 있는데, 바로앞 편의점에서 선배같은 사람이 나왔다.

시선이 마주친다. 아직 거친 호흡을 쉬는 나에게, 그 무표정으로 다가온다. 반사적으로 긴장감이 맴돈다.

"앗, 안, 안녕하세요"

조심스럽게 인사하는 나에게, 되돌아 온 건,


#20

차가운 포카리였다.

"엇"

"소리, 잘 내게 됐어"

그렇게 말하곤, 선배는 가버렸다. 처음으로 선배의 웃는 얼굴을 봤다. 올라간 심박수가 더욱 상승한다.

주위 소리가 전부 사라져선 빨라지는 고동소리만이 들린다. 몸이 뜨거운 건 여름 태양이기 때문인가.

가슴이, 아프다.


#21

높아져가는 고동소리를 침착시키며 연습하러. 여어, 하고 팟하고 등장하는 친구. 무언가가 내 등 뒤를 눌렀다.

"역 앞에 아이스 가게, 오늘, 가고 싶은데..." 그렇게 말했던 건 나다. 전에 그녀가 같이 가자고 했지만, 

침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단 이유로 거절했던 것도 나다. 그 이후로 어딘가 좀 어색했다.


#22

갈래-----! 친구는 웃으며 내 앞에서 방방 뛰어들었다. 정말 많이 걱정시켰다. 미안해. 하지만 이런 내 옆에 항장 있어주었다.

고마워, 그녀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인다. 서로 부끄러워해 이상한 분위기가 되었지만, 그것조차도 귀여워 우리들은

바보같이 웃었다.


#23

파트 연습이 시작하기 전에 선배 곁으로. "오늘 아침엔 감사해'씁'니다" 조금 깨물고 말았다.... 창피해, 눈을 마주칠 수 없다.

응,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재빠르게 그 자리를 떴다.

플루트를 손에 쥔다. 선배가 시야에 들어온다. 언제나와 다른 긴장에 심장이 두근거렸다.


#24

또 힘을 줘서 소리가 엇나간 그 때,

"괜찮아"

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. 그 순간, 스윽, 어깨에 들어간 힘이 빠져나가 몸이 가볍게 된 기분이 들었다.

심장은 여전히 시끄럽지만, 머리와 몸은 진정되어, 모든 손끝마다 신경을 쓸 수 있었다. 자세를 바로 잡았다. 후, 집중한다.


#25

아, 이 감각이야.


거기서부터는 자유로웠다.


#26

내 이미지가 소리가 되어 세계를 만든다. 합주에서 소리와 소리가 겹쳐져 색채를 짙게하고, 반짝임이 이어지는 걸 피부로 느낀다.

그래, 여태까진 내 소리만을 좇는데 필사적이라, 주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. 분명 혼자서 연주한 거다.

오늘은, 모든 소리를 마음이 집중하고 있다.


#27

리듬을 타고 손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감각을 알게 되었다. 주위의 호흡조차도 들리는 듯하다. 오랜만에, 선명한 세계를

연주하는 이 풍경 안에 있는 자신에게 가슴이 뛴다. 즐거워, 재밌어. 연주가 끝나고 생각치 못하게 팟하고 선배 쪽을 보니

작게 끄덕여주었다. 또 마음 한 켠이 죄여온다.


#28

"커플 많네~" 주위를 둘러보며 친구가 말했다.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는 최근 개점해서 그런지, 연인들이 많다.

문득 떠오른 얼굴에 살짝 체온이 상승해서, 서둘러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는다. 입 안에 딸기 과육을 느끼고 있으니

흥분을 가라앉힌 기분이 들었다.


#29

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음주 불꽃놀이 대회에 같이 갈 약속을 했다. 벌써 그런 시긴가. 처음엔 그렇게나 끝없이 기네하고 느꼈는데,

벌써 여름방학도 남은 2주정도 남았다. 선배와는, 앞으로 몇 번 만날 수 있을까. 가슴이 송곳을 찌른듯 아프다.

여름이 끝나면, 선배는 도쿄에 돌아가고 만다.


#30

매년 여름휴가 땐, 고향에 돌아가서 할아버지 가게에서 알바하며 도와준다는 것. 고향에 있는 동기들과 고문(顧問)을 만났을 때,

지도를 부탁받은 것. 둘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 수락한 것. 다른 애와 얘기하는 선배를 옆에서 무의식적으로 쫓고만다.

선배와 눈이 마주칠 거같아 휙하고 악보에 눈을 돌린다.


#31

어떤 음악을 들으세요? 플루트는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? 알바는 어떤 거 하나요? 어떤 과목을 잘했어요? 도쿄는 어떤 곳인가요?

쉬는 날엔 뭐하세요? 아이스크림은 좋아하세요? 불꽃놀이 대회엔 가세요?


여자친구는 있으세요?


#32

묻고 싶은 건 산더미처럼 있지만 하나도 묻지않는다.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면 어쩌지.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게 되면 어쩌지.

겁쟁이인 자신에 움츠러든다. 아아, 또 안타까운 감정을 키우고 말았다. 이녀석은 플루트에 방해는 되지 않더라도,

어쩔 수 없을 정도로 절실히 가슴을 아프게 한다.


#33

상점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옛날 음악을 들으면, 몇 살이 되도 어릴 때처럼 두근두근거리게 된다.

유타카 차림으로 빙수를 먹는 여자애들, 가면을 쓰고 떠드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걷는 가족. 올해도 붐비고 있다.

혼잡한 거리는 좋아하진 않지만, 지방에서 하는 축제 분위기는 예전부터 좋아한다.


#34

상점가를 빠져나와 조금 걸으면 큰 공원이 있고, 거기가 축제 회장이다. 二尺玉(불꽃놀이에서 쏘아올린 불꽃의 크기)인 

큰 불꽃이 3발 올라가는 이 주위에선 유명한 축제라, 현외에서 오는 손님들도 많다. 

더워-! 하며 부채질을 하는 친구의 유카타차림이 흐트러져서 걱정이다. 꽤 오랜만에 입는 유카타에 기분도 늠름해진다.


#35

오는 와중 산 아이스캔디를 한 손에 들고, 여름 공기에 땀을 흘리면서도 초롱불을 따라 공원까지 걷는다.

공원에 다다르니, 늘어선 포장마차에 그리운 향이나 잡다함에 더욱이 가슴이 뛴다. 

오른쪽 귀 위에 작게 엷게 핀 꽃장식을 정돈하는 척하며 주위를 둘러본다. 사람, 많네.


#36

팡, 하고 멀리서 소리가 난다.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. 포장마차를 주위를 돌아다니던 사람들의 발이 멈추어간다.

우리들도 멈추어 서서, 빨강, 녹색, 오렌지, 파랑, 핑크, 컬러풀하게 빛나며 펴서는 사라지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.

사진을 찍거나 환호성을 지르거나하면서 잠시동안 바라보던 그 때,


#37

"앗- 선배분들이네! 가자"며 친구가 내 손을 잡고 그 쪽으로 달려간다.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다. 하지만 허를 찔리면 심장에 좋지 않다...

안녕하세요, 인사를 한다. 여선배가 유카타를 칭찬해줘서 기쁘다. 음악실 밖에서 보는 선배들은 엄청 어른처럼 보여서,

어쩐지 조금 덧없었다.


#38

다같이 불꽃놀이를 올려다본다. 2, 3, 2. 가장 뒤의 2가 나와, 선배다. 친구가 방금 낚은 금붕어 이야기를 다른 선배들에게 열변하는 게 들린다.

나도 뭔가 말하지 않으면...

"최근에, 즐겁게 연주하고 있어" 조심히 말을 고르는 나에게 언제나처럼 조용한 톤으로 선배가 말을 걸어주었다.


#39

네, 하고 답한 뒤에, 몸이 멋대로 한 걸음, 선배 쪽으로 가까워지는 걸 느낀다. 불꽃놀이 소리에 조금 듣기 어려워지는 거였겠지.

단 그 한 보폭 거리인데, 지금이라도 바로 닿을거 같은 이 거리에 심장이 부서져 멈추어버릴 거 같이 격렬하게 맥을 뛰었다.


#40

런닝해? 선배의 말을 계기로, 거기서부터 시작하듯 말이 넘쳐났다. 맨 처음 선배가 무서웠던 거, 그런 말을 들어서 분했던 거,

하지만 선배 덕택에 잘 연주할 수 있게 된 거. 정말 감사하고 있다는 거. "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거 같아서. 쉬는 중에도 계속 불었었고"


#41

"그런 식으로 말하면 더 해보지 않았을까 싶었어" 심장 소리가 시끄럽다. 선배의 말에 집중한다.

"나도 예전에, 흔히 말하는 슬럼프를 경험했어. 아무리 생각해도 잘 되지 않고, 분함을 떨쳐내고 싶어서 매일매일 달렸어.

그랬더니 어느샌가 개운해져서 잘 불게 되었어"


#42

심한 말을 해서 미안, 불꽃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선배의 옆얼굴은 어딘가 부끄러워하는 듯이 보였다. 무관심하며 차가워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.

선배는 봐주었던 거였다. 그 말은 틀림없이 나를 위한 말이었던 거다. 참을 수 없이 기뻐서 눈 앞의 색채가 전부 빛나보였다. 하지만,


#43

하지만, 선배. 평범하게 말해주었으면 좋았잖아요. 평범하게 어드바이스 해줬어도 전 분명 달렸어요. 그런, 선배의 올곧지 않은 부분이

어쩐지 귀엽다고 느껴 웃고 만다.

선배. 선배. 저기 말이죠, 선배. 좋아해요.

불꽃놀이 빛에 비춘 선배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.


#44

펑, 한층 더 큰 소리가 울린다. 이 축제에서 가장 큰 불꽃이 올라간다. 밤하늘에 크게 펴서는, 빛방울이 흘러넘쳐선 반짝반짝 아쉬운 듯 사라진다.

멋지네-,하며 중얼거린 선배의 옆얼굴을 다시 한 번 본다. 이 쪽을 봐주시지 않을래요? 불꽃이 아니라.

"선배"

시선을 맞춘다.


#45

"저기..."

기세 넘치게 말해보았지만, 그 다음말이 나오지 않는다. 전하고 싶은 건, 단 한마디 뿐인데. 왜? 작게 더듬거린 내 말을 들으려고하는

선배와 정말 조금 가까워진다. 바로 옆에 있는 오른손은 조금만 하면 닿을 거 같다. 닿고파. 닿고 싶어. 마음만이 가속한다.


#46

"안녕하세요-!"며 인사하는 그 목소리는, 다른 취주악부 부원들이다. 난 반사적으로 팟하고 선배에서 떨어지자마자, 그 순간 모든 게 부끄러워져서

"저,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서" 그렇게 웃으며, 그 자리를 떴다. 유카타 옷깃을 꽉잡는다.


멀리서 펑,하고 불꽃이 터졌다.


#47

"선배를 좋아하는 거, 같아"

축제에서 돌아오는 길에, 처음으로 친구에게 말했다. 알고 있었어, 큭하고 웃으며 대답하는 친구. 

"들켰었어?! 같은 얼굴 하고 있는데, 얼굴에 다 나타나는 걸~. 오늘도 계속 쭈뼛쭈뼛하니까 나도 필사적으로 찾았는 걸!!" 하고 아하하 웃는 친구.

역시나 그녀다웠다.


#48

두근두근거리고, 더욱 알고 싶다던지, 하지만 그걸 아는 게 무섭다던가, 닿고 싶다던가, 느끼고 싶다던가, 이렇게나 누군가 때문에 심장이 아파오는 건 처음이라,

게다가 엄청 선배이기도 하고,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. 날 지켜주는 얇은 투명막이 있어서, 이걸 깨부수는 게 엄청나게 무서워.


#49

지금까지 마음 속에서 응어리진 감정이 말이 되어 조금씩 입에서 흘러넘친다. 친구가 말없이 들어준다. 단 하나, 그 사람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.

"그치만, 조금 있음 여름방학도 끝나" 그렇게 말한 친구의 얼굴은 진지했다.

내일부터 다시 연습 힘내자. 그렇게 말하며 우리들은 헤어졌다.


#50

다음날 아침. 어제는 제대로 잘 수 없어 조금 몸이 무겁다. 천천히 달리는 중에 머리가 깨끗해져간다. 도중에, 멀리서 기억에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한다.

짐이 많다. 내 발걸음은 이미 그 사람 곁으로 가고 있었다. "어디 가는 중이세요?" 거친 호흡을 내쉬며 선배에게 묻는다.

기분 나쁜 긴장감이 떠돈다.


#51

실은, 하며 선배가 이야기한다. 오늘 아침에, 도쿄 쪽에 소속한 작은 음악 서클 멤버가 연락을 줬다는 거. 

그 서클에 자매가 있고, 그 자매의 아버지가 어제 자택에서쓰러져서 입원했다는 거,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.

자매를 고향에 보냈다는 것. 그 둘은 플루트 연주자라는 것.


#52

"다른 녀석들에게도 말 걸어봤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아서 말야"

"연주회, 내일이래"

그리고, 방금전 고문한테서 그 이유를 말하고 지금부터 도쿄로 돌아간다는 걸 들었다.


심장이 부서질 거 같다. 괴로워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.


울지마, 울지마.


#53

우리 집, 여기 근처라 말야. 선배가 계속 말한다. "그래서, 매일 아침 방에서 봤었어. 맨처음엔 죽을 거 같은 얼굴 했었지.

금방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는데, 아침마다 계속 제대로 하더라"

"이제 괜찮을 거야. 힘내"


마음이 녹을 거 같이 뜨거운 감정으로 채워짐과 동시에 괴로움도 부각된다.


가지 말아요.


#54

자기소개 때 나긋해 보이던 선배. 깊고 투명한 음을 내던 선배. 무서웠던 선배. 짓궂게 보였던 선배. 포카리를 건네줬을 때 웃어줬던 선배.

불꽃놀이 때의 선배. 선배의 옆얼굴. 목소리. 몸짓. 기억 안에 있는 선배가 뇌리에 차례차례 나온다. 다음 순간, 바로 말이 튀어나왔다.


#55

"저도... 도쿄에 있는 대학, 시험칠래요, 기다려 주세요"


"정말로, 감사했습니다!"


#56

기세 좋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다시 올려다보니, 선배가, 또 봐, 하며 웃어주었다. 심박수가 급속하게 빨라진다. 분명 지금, 얼굴 빨개졌다.

다시 한 번, 깊숙히 머리 숙이고선 그 자리를 떴다.


"또 보자"


처음엔 그렇게나 차갑게 들리던 목소리가 지금은 이렇게나 상냥하게 귀에 들린다.


여름바람을 스치며, 나는 달려나갔다.


-끝

Posted by 신율